"인간은 책을 통해 완성…새롭지 않으면 썩어"
박맹호 민음사 회장이 자서전을 내고 출판인생 50년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있다. /민음사 제공
박맹호 민음사 회장(79)이 지인들에게 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47년 동안 한국 출판시장을 주도해 온 그가 팔순을 앞두고 《박맹호 자서전 책》(민음사)을 펴냈다. 지금까지 3000종이 넘는 책을 발행한 박 회장이지만 자신의 책을 낸 건 처음이다.
그는 11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자서전 낼 생각은 감히 하지 않았지만 ‘세상에 조금은 보태고 가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을 했다”며 “내 경험을 기록함으로써 ‘책’이 확산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박 회장이 출판 사업에 뛰어든 것은 33세 때인 1966년. 서울 청진동의 10평짜리 옥탑방에 민음사를 차렸다. 출판사 이름은 ‘올곧은 백성의 소리를 담는다’는 의미. 그때만 해도 일본책의 해적판이 주류를 이뤘다.
“우리 출판이 너무 빈약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서 직접 출판사업을 하면 이렇게 좀 고쳐보겠다는 고민을 나름대로 하기 시작했죠.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제 인생에서 제일 잘한 결정이 출판 사업을 시작한 겁니다.”
“힘들었지만 《대지》나 《죄와 벌》 같은 작품을 읽으면서 소설은 나 같은 둔재가 아니라 천재들이 쓰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차라리 천재 작가들을 발굴하자고 결심했죠. 출판계를 성장시키는 게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행복했습니다.”
첫 책 《요가》는 당시로서 베스트셀러에 가까운 1만5000부나 나갔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싶어 쉽게 생각한 두 번째 책 《장미부인》은 그의 표현대로 ‘박살’이 났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큰 빚을 지게 된 거죠. 당시 약사이던 아내가 활명수를 팔아 돈을 대줬어요. 활명수 한 병이 1원 하던 때인데 3000만원의 빚을 졌으니 이러다 사람 잡겠다 싶었죠. 아니나 다를까 아내가 쓰러지더군요. 그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는 재기한 후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했다. 오늘의 작가상을 통해 한수산, 이문열 등의 소설가를 발굴했고 큼직한 시집뿐이던 당시에 현재의 시집 크기인 9판 30절을 세계 최초로 만들면서 시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책 편집을 가로쓰기로 바꾼 것도 그가 처음이었다. 1980년대 초 대한출판협회 부회장 시절 ‘출판 산업’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며 출판의 현대화를 이끌기도 했다. 출판 산업이 아마추어 동호회 쯤으로 치부되던 시기에 획기적인 인식 전환을 이끌어낸 것이다.
너도나도 어둡다고 하는 책의 미래에 대해서도 박 회장은 낙관했다. “늘 어렵다고들 했지만 출판 산업은 지금까지 꾸준히 확장돼 왔다”고 그는 설명했다. 1960년대에는 1만5000부가 팔리면 베스트셀러라고 했지만 1970년대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이 30만부 이상 팔렸고, 1980년대에는 최초의 밀리언셀러 《홀로서기》가 나왔으며 1990년대에는 해마다 밀리언셀러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책의 역사는 성장의 역사였지, 결코 쇠퇴의 역사가 아니었습니다. 책은 인간이 타고난 유전자예요. 인터넷의 파편화된 정보로는 사람을 성장시킬 수 없습니다. 인간은 책을 통해서만 완성되죠. 시대에 맞춰 좋은 책만 펴낸다면 출판은 영원합니다.”
팔순이지만 박 회장은 “은퇴는 없다”고 했다. “저는 쉬는 게 곤욕입니다. 끊임없이 일을 잡지 않으면 불안해져요. 세계문학전집을 내기 시작할 때는 100권 정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욕심으로는 1000권까지 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306권이 나왔으니 앞으로도 계속 출간해서 세계문학을 한국에서 수용하고 싶은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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